별처럼 수많은 조식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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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태국, 베트남)의 호텔 조식
휴가철, 그리고 요즘처럼 포털의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며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소재가 있다. 내게는 여행에서 숙소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굳이 말해 무얼 할까. 이럴 때 '입만 아프다'는 너스레를 떠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뭐 나는 그 정도 까진 아니다.
모두들 이미 각자의 확고한 기준과 고집으로 선호하는 숙소의 취향이 뚜렷하다. 뿐만 아니라 자주 사용하는 숙박 전용 어플의 '지금 깎아줘?' 아니면 '열 번 묵고 한 번 평균 가격에 묵게 해줘?' 묻는 알랑방구 같은 눈속임에도 익숙하다.
'좀 가봤다 하는' 여행 블로거, '좀 쓴다 하는'여행 에세이, 심지어 오후의 볕을 쬐는 고양이에게도 '저 숙소에 대해 한마디 여쭙겠는데..'하고 물어도 한마디 거들어 줄 것만 같다.
그렇지만 나 역시도 남들 하듯 걸고넘어져본다.
"숙소는 여행이라는 시간적으로 제한된 흐름에서 개인과 타인의 추억 형성에 상당 부분 기여한다.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태국 치앙마이, 마니나라콘 호텔 Maninara korn hotel
숙소가 중요하듯 내게는 숙소의 조식도 서로의 무게가 같을 만큼 중요하다.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정작 주로 다니는 중 저가의 호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은 대부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업계에서 아메리칸 스타일 조식이라는 말은 소박한 조식을 통용하는 말이다.)
적어도 조식 예찬론자라면 고급 호텔의 으리으리한 조식의 추억 정도는 무용담 삼아 지니고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그런건 없다.
'호캉스족' 들이 들으면 콧방귀를 뿜뿜 댈 조그맣고 아담한 크기의 깜찍한 조식이 전부다. 뭐 어찌 되었든, 고만고만한 조식의 수준은 내게 묘한 긴장을 준다.
태국 치앙마이, 사쿨차이 플레이스 호텔 Saculcai place hotel
여행을 떠나기 전, 숙소 예약을 할 때면 먼저 조식에 체크를 해두고 검색을 시작한다. 경험으로 볼 때 숙소에서 조식의 메뉴를 홍보용 사진으로 제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럴 때 트립어드바이저 Tripadviser의 실사진들은 큰 힘이 된다. 집단 지성의 능력에 속으로 박수(다크나이트에서 조커의 박수씬을 아시는지, 뭐 그런 느낌을 떠올리면 적절하다. 입을 쩝쩝 거리며 박수를 치다 바라보는 쪽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는)를 친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면 그때 고마웠다고 눈인사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여행 전 미리 풍부한 정보를 갖고 가는 건 조금 김새는 일이지만 그래도 최악의 아침을 맞이하는 참사는 피할 수 있다. 매일 아침 아내의 구박에 곤욕을 치르는 남편을 떠올려보라. 4차 산업혁명과 집단지성에게 경의를 표한다.
베트남 다낭, 반다 호텔 Vanda hotel
배낭여행객이 많은 여행지는 카페든 식당이든 특정 시간 동안 아침메뉴를 판매하는 가게를 쉽게 볼 수 있다.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아도 맥도널드, KFC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의 메뉴들도 훌륭하다.
가끔 여행을 떠나기 전, '매일 아침을 근처 브런치 식당에서 먹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전날 먹은 저녁의 소화 정도에 따라 그날그날 다른 아침을 먹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 방법이다.
작심해서 상상 해보면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매일 아침을 카페테리아에서 먹는 것만으로도 하루키의 '먼 북소리'처럼 유려한 문체로 아침의 카페테리아를 묘사하고 조르바계 그리스인에 대해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어라'에서 나온 '각성이 필요하지 않아도 커피를 들이켤 수밖에 없는 모래 같은 끼니' 같은 문장도 술술 써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 이상 내 글이 지지부진한건 매일 아침을 호텔 조식에 의존하는 몹쓸 취향 탓이라고 주장할 근거도 마련된다. 결코 깜이 안되서가 아니라.
태국 끄라비, 블루소텔 호텔 Blusotel hotel
그럼에도 호텔 조식을 사랑하는 이유는 몇 가지 있다. 호텔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그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아침을 먹는 모습을 보는 건 꽤나 흥미진진하다.
아침을 적당히 챙겨 먹고 배가 불러오면 다른 투숙객들의 모습을 살펴보며 국적을 멋대로 추리해보곤 한다. 그릇에 담는 음식의 종류와 양, 곁들이는 음료는 충분한 단서가 된다. 곁에 왓슨이 없어도 이미 한국에서 온 셜록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양손 끝을 서로 맞대며 대상을 보지 않고 단서들을 줄줄 읊어대는 게 기본 에티튜드다.
"베이컨을 꽤나 바삭하게 구웠군, 양도 어마어마해. 아마도 미국인이 틀림없어. 그것도 동부 출신."
"초코 시리얼에 우유 대신 요거트를 넣은걸 보니, 북유럽계일 가능성이 높아"
조식을 먹는 다양한 국적의 테이블에서는 가끔 열띤 대화가 오고간다. 아마도 나처럼 국적 추리에 열을 올리고 있으리라. 이렇게 된 이상 호텔측에서 정식으로 주최하는 작은 이벤트를 열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렇게 나름의 합리적 이유를 찾아보지만 대게 근본 없는 주장만 난무한다. 승부를 가릴 수도 없다.
태국 치앙마이, 레인포레스트 호텔 Rainforest hotel
식당을 이용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지루하지 않다. 뷔페에서 흔히 쓰는 입구가 큰 용기(고전게임 '팩맨'을 닮았다.)를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힘차게 열었다가 이내 실망하는 모습을 볼 때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같이 울상을 지어주고 싶다. 영화에서 처럼 입꼬리를 한없이 내리고 왼손은 이마를 짚고 고개는 절레절레 저으며 아래로 떨구는 게 좋겠다. 전하는 위로의 말로는 "뭐 그런 게 인생 아 아니 조식 뷔페 아니겠어요? 힘내서 다음 팩맨을 열어보죠." 가 적절하겠다.
굳이 넣지 말라는 크로와상을 컨베이어 벨트식 토스터기에 직원 몰래 넣을 때면 구석에서 망이라도 봐주고 싶다. 식당에 직원이 없을 확률은 무척이나 낮으니 공범 혐의를 피하기 위한 뻔뻔한 표정도 미리 연습해두면 좋다. 대게 높이가 높은 크로와상은 사이에 끼고 굴뚝이 된 토스터기로 장내는 잠시 소란스러워 진다. 연기쇼의 주인공은 어쩔줄 몰라하며 빵집게를 연신 놀려본다. 불린 시리얼로 곤죽 만들기에 지겨워진 아이들은 굴뚝 연기에 '호이!' '호이!'하며 소리를 지른다. 유아용 시트에 앉은 갓난둥이도 '흐헤헤' 거리며 숟가락을 내려친다. 엄마들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아이들을 챙긴다.
어느순간 베테랑 직원이 나타나 능숙하게 해결을 하며 문제는 일단락 된다. 연기쇼의 주인공에게 별다른 주의는 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다시 곤죽을 만들어댄다.
태국 끄라비, 훌라훌라 리조트 Hula Hula resort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호텔들이 있고 각 호텔들의 조식에는 저마다의 얼굴과 표정이 있다.
별처럼 수많은 조식 중
그중에 그대를 만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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