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를 대하는 개인의 야수성


  냉장고 한켠에서 소외받던 연유를 토마토에 뿌려 먹은 이후 그 맛에 깊게 매료되었다. 그저 단순한 단맛이 아닌 우유의 고소함과 부드러움이 토마토의 싱싱함과 더할 나위 없이 어우러진다. 


설탕이 솔솔 뿌려진 토마토는 인류의 오랫 벗이자 동반자로 역사 속 굵직한 사건들마다 그 존재를 함께 해 왔지만(칠흑 같은 밤에도 토마토가 담긴 그릇에 적당량의 설탕을 뿌리기 위해 에디슨이 전구를 개발했다는 등, 농담입니다), 설탕을 인류의 적으로 낙인찍고 함께 해온 오랜 세월을 한순간에 증오하는 연애의 세기말적 태도를 보인 후부터 토마토에 무언가를 뿌려 먹는 행위는 몰상식한 태도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인지 토마토에 연유로 8자를 그릴데면 묘하게 금기를 깨는 아득함이 있다.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를 8 등분하여 그릇에 잘 담고 그위에 무한대를 그리려 누운 8자처럼 연유를 휘휘 뿌려댄다. 달게 먹으려 연유 욕심을 부려버리면 먹는 내내 입은 즐겁겠지만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니 딱 8자 한 바퀴. 언제 먹어도 복된 음식이지만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 먹는 토마토가 가장 맛있다. 요즘같이 열대야에 지친 무거운 몸으로 아침의 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대지의 싱싱함을 입안 가득 머금는 것이다. 




  토마토 한 그릇과 어울리는 여러 메뉴가 있지만 나는 보통 바나나를 같이 먹는다. 우선 과일이어야 한다. 토마토 한 그릇을 먹고 나물에 찌개 같은 밥을 먹는 건 뭔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렇게 해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다. 아침 가득 느꼈던 대지의 싱싱함의 텐션을 어느 정도는 이어가야 할 것 같다는 책임감도 든다. 보통 사과와 빵도 좋은 아침메뉴지만 바나나를 먹는 장점은 분명 있다. 무엇보다 굉장히 간편하다. 사과를 씻고 껍질을 벗겨서 자르는 일도, 그저 씻어 입으로 와각 베어 먹는 일도 매일 하려면 충분히 성가시다. 빵을 먹는 것도 큰 덩어리라면 먹기 좋게 잘라야 하고 잼이나 버터 따위도 발라야 한다. 게다가 흘린 빵부스러기도 꽤나 짐스럽다. 건강한 아침을 먹기 위한 부단한 노력은 토마토로 족하다.


  바나나를 먹기 위해 윗 꼭지부터(아래쪽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 취향껏) 꺾어 반쯤 한 커플 벗겨낸 후 다른 쪽도 반복한다. 보통 동서남북 4방향으로 껍질을 내리 우는 게 안정감이 있지만 좀체 쉽지 않다. 









껍질을 벗겨낸 흰 바나나를 마주하면 대부분의 개인은 내면의 포악한 야수성과 마주한다. 당근이나 오이를 베어 먹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입을 크게 벌려 단시간에 입안 가득 베어 물고는 우걱우걱 씹어 삼킨다. 마치 포악한 숫사자, 굶주린 악어의 사냥과 같다. 순간 바나나는 여리고 약한 노루의 심정으로 단숨에 제압당한다. 연약하고 부드러울게 너무나도 명백한 존재를 제압하는 행동에 거침이 없다. 당근 정도만 되더라도 입에 넣어 똑똑 부러뜨려 먹게 되고 그 순간에는 한쪽 눈을 감고 당근이 부러지나 내 어금니가 부러지나 걱정과 우려도 하게 된다. 바나나 먹듯 당근을 대했다가는 치아며 턱관절이 남아나질 않게 된다.


무더운 여름 치솟은 불쾌지수에 소환된 저마다의 야수성을 바나나로 쏟아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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