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넛지는 선택 설계자가 취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넛지 형태의 간섭은 쉽게 피할 수 있는 동시에 그렇게 하는 데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 넛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다. 과일을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것은 넛지다. 그러나 정크푸드를 금지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다.

  휴대폰을 새로 구입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때 당신은 수많은 선택을 내려야 한다. 휴대폰이 최신형일수록 내려야 하는 선택도 많아진다. 액정의 배경화면, 벨소리, 음성 메시지가 수신될 때 울리는 벨소리 횟수에 이르기까지. 휴대폰 제조업체에서는 그러한 각 선택 항목들에 대하여 디폴트 옵션을 미리 지정해둔다. 조사결과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고 한다. 달리 선택할 수 있는 벨소리보다 디폴트 옵션으로 설정된 소리가 훨씬 귀에 거슬리는 경우에도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타성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힘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특정한 정책이나 방침이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되면, 민간의 기업이나 공공부문의 관리자들은 그것을 디폴트 옵션으로 설정함으로써 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렇게 디폴트 옵션을 설정하는 행위나 그밖에 얼핏 사소해 보이는 메뉴변화 전략 등이 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는 저축을 늘리는 일에서부터 의료보장 개선, 이식수술을 위한 장기기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해당되는 얘기다.



무라카미 하루키 -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사과의 마음

    나는 대체로 냄새를 맡아보고 신맛이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홍옥을 잘 먹고, 보스턴에 살 때는 매킨토시만 먹었다. 매킨토시는 가장 싼 품종의 하나로 슈퍼에 가면 큰 비닐봉지에 담은 것을 고작 몇 달러에 살 수 있다. 그걸 사서 질리지도 않고 매일 먹었다. 껍질을 깎아 셀러리와 함께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그래서 보스턴 시절을 생각하면 조그맣고 짙은 주홍색의 매킨토시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줄곧 매킨토시 컴퓨터를 애용하고 있다. 매킨토시 사과는 Mcintosh, 컴퓨터 ‘애플’은 Macintosh. 상표권 관계로 조금 철자가 다른다. 아침에 일어나 주방에서 사과를 하나 들고 서재로 간다. 사과 마크의 ‘애플’ 스위치를 누른 다음 새벽빛 속에서 화면이 준비되기를 기다린다. 그동안 빨갛고 새콤한 사과를 우적우적 먹는다. 그리고 자, 오늘도 열심히 소설을 써야지 하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그런 생활을 계속해왔다. 절대 윈도스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태로는 매킨토시를 갈아탈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윈도스에는 사과 마크가 붙어 있지 않으니까.


[책, 글, 문장] - 이석원 -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책, 글, 문장] - 김어준 - 나는 그를 남자로 좋아했다

[책, 글, 문장] - 유시민 - 나의 한국현대사

[책, 글, 문장] - 강원국 - 대통령의 글쓰기

[책, 글, 문장] - 칼 세이건 - 창백한 푸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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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서점

평생을 드나들었어도
나를 알아보는 이 하나 없고
나 또한 얼굴을 익히고 있는 사람 하나 없는 곳.
그래서
내가 누구든 상관없이 맘 편히 찾을 수 있는 곳.
만원 안짝이면 원하는 것을 하나쯤 손에 넣을
수 있고
누구도 다급하게 이 책 좀 사라고 소매를 잡아
끌거나
막판 떨이 70% 세일이라며 확성기에다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지 않아 좋은 곳.
무슨 일이 그리 급한지 앞사람을 밀치며 지나가거나
타고 있던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사람은 아주 가끔만 있는 곳.

나는 오늘도 서점엘 간다.
일이 있어도 가고 없어도 간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도 가고
책을 사기 위해서도 가고
그냥 야채김밥이 먹고 싶어서도 간다.

할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
작은 희망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까.

그럴 때도 나는 서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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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 나는 그를 남자로 좋아했다


1. 그날은 재수학원 대신 당구장에서 종일을 보내던 중이었다. 청문회가 한창이었지만 그 시절 그 신세의 그 또래에게, 5공의 의미는 쿠션 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건 순전히 우연이라 하는 게 옳겠다. 수구 앞에 섰더니 하필이면 티브이와 정면이었으니까. 사연은 그게 전부였으니까. 웬 새마을운동 읍네 지부장 같이 생긴 이가 눈에 들어 왔다. 그가 누군지 알 리 없어 무심하게 시선을 되돌리는 찰나, 익숙한 얼굴이 스쳤다. 다시 등을 폈다.



어, 정주영이네. 거물이다.

호, 재밌겠다. 타임을 외치고 티브이로 달렸다.



일해 성금의 강제성 여부를 묻는 질의에 “안 주면 재미없을 것 같아” 줬다 답함으로써 스스로를 군사정권의 일방적 피해자로 둔갑시키며 모두에게 공손히 ‘회장님’ 대접을 받고 있던 당대의 거물을, 그 촌뜨기만은 대차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몇 놈이 터트리는 탄성. “와, 말 잘 한다.” 그러나 내게는 달변이 문제가 아니었다.



거대한 경제권력 앞에서 모두가 자세를 낮출 때, 그만은 정면으로 그 힘을 상대하고 있었다. 참으로, 씩씩했다. 그건 가르치거나 흉내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를 알았다.


2. 이후, 난 그를 두 번 만났다. 부산에서 또 실패한 직후인 2000년 봄, 백수가 된 그를 후줄근한 와룡동 사무실에서 만난 게 처음이었다. 낙선 사무실 특유의 적막감 속에 팔꿈치에 힘을 줄 때마다 들썩이는 싸구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그때 오갔던 말들은 다 잊었다. 아무리 기를 써도 기억나는 건, 담배가 수북했던 모조 크리스털 재떨이, 인스턴트 커피의 밍밍한 맛, 그리고 한 문장뿐이다.



“역사 앞에서, 목숨을 던질 만하면 던질 수 있지요.”



앞뒤 이야기가 뭔지, 왜 그 말이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그 말을 기억하는 건, 오로지 그의 웃음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누구나 저만의 레토릭이 있다. 난 그런 수사가 싫다. 같잖아서. 저 하나 제대로 건사해도 다행인 게 인간이다.

역사는 무슨. 주제넘게. 너나 잘하셔. 그런 속내. 그가 그때 적당히 결연한 표정만 지어줬어도, 그 말도 필시 잊고 말았을 게다. 정치인들은 그런 말을 웃으며 하지 않는 법이다. 비장한 자기연출의 타이밍이니까. 그런데 그는 웃으며 그 말을 했다.

그것도 촌뜨기처럼 씩씩하게.

참 희한하게도 그게 정치적 자아도취 따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진심으로 내게 전해진 건, 순전히 그 웃음 때문이었다.

난 그때 그렇게, 그에게 반했다.



두 번째 만남은 그 이듬해 충정로 해양수산부 장관실에서 대선후보 인터뷰로 이뤄졌다. 그 날 대화 역시 잊었다. 기억나는 건 이번엔 진짜 크리스털이었다는 거, 질문은 야박하게 했다는 거 - 그게 그에게 어울리는 대접이라 여겼다. 사심으로 물렁한 건 꼴불견이니까. 그런 건 그와 어울리지 않으니까 - 그리고 이 대목이다.


“시오니즘은 국수주의다. 인류공존에 방해가 되는 사고다.”



놀랐다. 그 생각이 아니라 그걸 말로 해버렸단 사실에. 정치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안전하지 않은 건 눙치고 간다. 그런데 그는 유불리를 따지지 않았다. 한편으론 그게 현실 정치인에게 득이 되는 것만은 아닌데 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통쾌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다. 이런 남자가 내 대통령이면 좋겠다고,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그 후 대통령으로 내린 판단 중 지지할 수 없는 결정들, 적지 않았으나 언제나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건, 그래서였다.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씩씩한 남자였다. 스스로에게 당당했고 같은 기준으로 세상을 상대했다. 난 그를 정치인이 아니라, 그렇게 한 사람의 남자로서, 진심으로 좋아했다.


3. 그래서 그의 투신을 받아들 수가 없었다. 가장 시답잖은 자들에게 가장 씩씩한 남자가 당하고 말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억울하건만, 투신이라니. 그게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종일 뉴스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담배 한 대를 찾았다는 대목에서 울컥 눈물이 났다. 에이 씨바… 왜 담배가 하필 그 순간에 없었어. 담배도 없이, 경호원도 없이,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혼자가 되어, 그렇게 가버렸다. 그 씩씩한 남자를 그렇게 마지막 예도 갖춰주지 못하고 혼자 보내버렸다는 게, 그게 너무 속이 상해 자꾸 눈물이 났다.



그러다 어느 신문이 그의 죽음을 사거라 한 대목을 읽다 웃음이 터졌다. 박정희의 죽음을 서거라 하고 그의 죽음을 사거라 했다. 푸하하. 눈물을 단 채, 웃었다. 그 믿기지 않을 정도의 졸렬함이라니. 그 옹졸함을 그렇게 자백하는 꼴이 가소로워 한참이나 웃었다. 맞다. 니들은 딱 그 정도였지. 그래 니들은 끝까지 그렇게 살다 뒤지겠지. 다행이다. 그리고 고맙다. 거리낌 없이 비웃을 수 있게 해줘서. 한참을 웃고서야 내가 지금 그 수준의 인간들이 주인 행세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뼛속 깊이 실감났다. 너무 후지다. 너무 후져 내가 이 시대에 속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을 정도로.



4. 내가 예외가 없다 믿는 법칙은 단 하나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거. 그가 외롭게 던진 목숨은, 내게 어떻게든 되돌아올 것이다. 그게 축복이 될지 부채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그만한 남자는, 내 생애 다시 없을 거라는 거.



이제 그를 보낸다.



잘 가요, 촌뜨기 노무현.


남은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유시민 - 나의 한국현대사

모든 권력은 집중과 확대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진보든 보수든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감시와 견제가 느슨해지면 누구나 권력을 오남용하려는 유혹이 빠진다. 이럴 때 시민들이 참여하고 비판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제도는 껍데기로 전락하고 만다.

유신헌법의 핵심은 몇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국민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뽑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대통령을 뽑는다. 
둘째, 국회의원을 한 선거구에서 둘씩 뽑도록 선거법을 고쳤다. 여당의원과 대통령이 임명한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을 합치면 의원 정수의 3분의 2가 되게 만든 것이다. 
셋째,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과 헌법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을 부여했다. 대통령이 무제한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인류 역사는 숱한 반란, 봉기, 내전, 혁명,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사태의 원인과 계기, 전개과정과 결과는 저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같은 게 있었다.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을 덮친 것이 혼돈이었다는 사실이다. 무리를 지어 폭력으로 부딪치는 격동의 순간에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동기와 지향에 따라 제각기 활동한다. 모두에게 익숙한 일상의 소통방식이 무너진 상황에서는 냉철한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충동이 행동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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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 대통령의 글쓰기


노무현 대통령이 간혹 썼던 방식이다. 2003년 10월 서울 YMCA 창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의 서두 연설이다.

“저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YMCA 회원입니다. 그리고 목사님, 기독교인과 함께 기도할 때에는 항상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88년 10월 일본 국회 연설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피와 땀의 결과라고 말하면서 “기적은 기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는 명언을 남겼다.

노 대통령 역시 2003년 4월 국회 국정연설에서 “시장 개혁만으로 시장은 개혁되지 않는다.”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일상생활 속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져야 시장이 달라지는 것이며,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위해서는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 문화가 먼저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던진 말이었다.

- 짧은 말의 위력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후 반응이 궁금해서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

이에 대해 출판사에서 답을 보내왔다.

 “!”
그 결과로 “레미제라블” 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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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건 - 창백한 푸른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작은 점의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모두 생각해 보라.


작은 점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 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세이건 - 창백한 푸른

(사진은 보이저 1호가 1990년에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찍은 모습인데, 동그라미 안에 작은 점이 지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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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주의 체제 내에는 본래부터 착취의 역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고용주는 노동자의 생산물을 팔아 얻는 돈보다 싼 값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며, 그 차익을 "이윤"으로 자기 호주머니에 챙기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언론에서는 이런 이윤을 고용주의 "모험"과 "경영"에 대한 보답이라고 찬양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런 말이 도둑질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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