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집 순대를 기다리는 일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후문에는 작은 분식집이 있다. 주변에 초등학교가 있는 탓인지 분식집은 그럭저럭 장사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비록 주인은 몇 번 바뀌었지만 보통 어머니뻘 되는 아주머니가 운영을 해왔다. 가끔 집에 가는 길 순대 생각이 간절할 때 종종 이곳을 찾는다.


  분식집이라면 으레 갖춰 놓는 벌건 떡볶이에 어묵 꼬지, 떡꼬치와 유년기 맞춤 메뉴인 피카츄돈까스, 컵에 담은 감자튀김이 있는 풍경. 그 한쪽에 촉촉한 비닐 이불을 덮은 순대가 있다. 굵직한 순대와 허파, 염통들이 뜨거운 김을 쬐고 있고 그 위로 솥뚜껑이 아닌 투명한 비닐이 덮여있다. 비닐은 뜨거운 김을 품어 물이 송글 맺히고 순대가 따뜻해 보이게 하는 역할도 톡톡히 해준다. 때론 비닐을 덮어놓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솥뚜껑으로 바꿔야 된다는 생각까지는 가지 못한다. 나 역시도 물방울이 맺힌 비닐 아래 자리한 순대를 보는 게 익숙하기도 하거니와 멋없이 넙데데한 솥뚜껑 아래에 있을 순대를 먹는 건 상상만 해도 목이 텁텁해진다. 이 비닐에 대한 갑론을박은 순대가 분식집 메뉴로 처음 선을 보였을 때부터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단군이래 가장 위생적으로 엄격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걸 보면 각 개인이 가진 엄격한 위생기준들의 Grey area에 운 좋게 위치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식당 테이블이 제대로 닦이지 않은 모습에 격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순대의 비닐 이불만큼은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보통 순대 1인분을 건네받으면 그 안에는 주인아주머니의 재량에 따른 비율로 포장된 순대와 내장들이 있다. 염원을 담아 염통이나 허파를 더 요청해보면 주인아주머니는 보통 적극 수렴해주는 태도를 보인다. 그렇지만 요구하지 않았을 때의 특수부위 양을 알 수가 없고 다른 사람과 비교 또한 힘들기 때문에 심리적 위안에 그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염원을 전하지 않고서는 순대를 기다리는 내내 마음이 초조하다. 이 순간 분식집은 순대를 주문한 서른의 어른이나 컵 튀김을 받아 쥐는 초등생이나 근원적으로 같은 심리 선상에 서게 만든다. 분식집 아주머니의 무소불위 재량권 앞에 속절없이 휘둘리게 된다. 사슴 같은 눈으로 염원하는 초등생과 달리 주변을 서성여보고 핸드폰도 만지작 거려 보지만 콩밭에 있는 마음은 쉽게 돌아오질 않는다.  부질없는 일인 줄 알지만서도 하지 않자니 영 마음이 찜찜한 것이다.


  검은 비닐봉지 한편에는 기대와 원망이 공존하는 순대와 된장, 소금, 양파가 각각 담긴 비닐봉지가 있다. 이 서브 아이템들은 모두 입이 좁고 긴 형태의 비닐봉지에 담긴다. 봉지의 끝에 내용물이 담기면 긴 목을 휙 한번 감아 내용물을 봉인해 버린다. 다른 것들보다 이 좁고 깊은 곳에 담긴 된장은 목폴라를 접듯 몇 번을 접고 접어야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고 갖은 애를 써봐도 결국은 보기 좋게 손에 묻고 만다. 안전 선까지만 걷어 올리자면 손의 참사는 피하겠지만 원활히 그곳을 드나들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딱 한 꺼풀만 더 접자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달라드면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은 장으로 칠갑된다. 웬만한 주의력과 경험 없이는 정복하기 힘든 영역인 것이다. 이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된장은 집의 쌈장으로 대체하기 힘들다. 보통 된장 한 봉지를 받아 들고 먹기 시작하면 절반 즈음에 동이 난다. 아쉬운 마음에 소금으로 먹어보지만 감칠맛 없이 짜기만 하다. 집 냉장고의 쌈장을 찍어먹어 보아도 그 맛과 감성이 확연히 다르다. 분식집에서 받아왔던 된장이 바닥나 소금이나 집 쌈장에 찍어 먹다 보면 내가 즐겼던 순대 맛은 순대보다는 된장이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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