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항저우를 떠난 비행기는 4시간여를 날아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비행에도 불구하고 시끌시끌한 중국 관광객의 틈바구니 속에 섞여 입국 도장을 받는다. 무리 지어 공항을 떠난 사람들 사이로 다음 비행기의 도착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다시 이곳에 오기만 기다렸던 내가 남겨져 있다.


  몇 년 전 '귀농'이라는 단어는 유행을 넘어 지금의 '힐링'과 같이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여겨졌다.  매연 가득한 도시 속 각박한 삶을 살아온 부모님 세대에게 풀과 꽃이 흐드러졌던 자신의 고향은 어떤 의미였을까. 어릴 적 행복했던 기억과 더불어 삶에 지친 자신의 순수함 또한 간직했던 이상의 땅, 지친 도시의 생활을 잊게 해줄 '힐링'의 땅일까. 

귀농 열풍과 오와 열을 맞춰 전국 교외의 땅값이 들썩였다. 소나타에 밀짚모자와 삽을 실은 전국의 아버지들은 주말 고속도로를 메웠다. 성화에 못 이긴 어머니도 어릴 적 추억에 가슴이 부푼다. 효도폰 위 제철 산나물을 검색하는 손놀림이 경쾌하다.


  한동안 이어지던 '귀향 러시'는 어느 순간 풀 베이듯 기세가 꺾였다. 아버지 퇴근시간에 맞춰 방송되던 TV프로 어디에서도 좀처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테마가 되었다. 포털의 메인을 장식하던 귀향 성공신화도 덩달아 자취를 감췄다. 그 많던 '귀향'은 누가 다 먹은 걸까. 

이유는 실로 다양하겠지만 우선 솟을 데로 솟은 교외의 땅값을 마주하였을 때 고향의 환상은 깨져버린다. 비록 내 살던 고향이 첩첩산중 산골짜기라도 나의 귀향만큼은 도시를 조금 벗어난 소도시 이길 바라는 마음. 귀향 흐름에 늦게 올라탄 늦깎이들은 일찍이 선배들과 미디어가 한껏 부풀려 놓은 땅값에 질려 더 넓고 깊은 지역을 탐구해 보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쳐버린다. '귀향은 내 얘기가 아닌 것 같다. 이 돈이면 도시 살지' 하는 억울함이 마음속 켜켜이 쌓인다. 밀짚모자의 삽질도 근교를 벗어나면 고행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이제 교외의 여유로운 삶은 미디어에서나 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푸른 바다 제주도의 여유로운 삶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이따금 서울의 북적함과 매캐한 매연마저 그리워 김포행 비행기를 타는 셀럽들의 이야기처럼. 



올드타운의 한 레스토랑. 'Street pizza'


한동안 대한민국 베이비붐 세대의 마음을 두둥실 떠오르게 만든 '귀농 신드롬'을 보며 옛 것의 정취와 모던함의 조화는 도시를 터전으로 살아온 현대인들에게 단백질과 비타민의 조화만큼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앙마이를 여행하며 느꼈던 'Old & New'의 재발견.

  

  '올드타운'이라는 옛 향수 자극하는 지명과 달리 그 안의 면면과 주변은 충분히 '힙'하다. 옛 적의 침입을 수없이 막았을 올드타운의 붉은 성벽을 지난다. 거리를 둘러보는 여행객의 발걸음은 애초 목적지를 쫒지 않아도 그 수고로움을 충분히 보상받는다. 낡은 거리와 사원들 사이를 걷다 보면 상업가의 자본과 예술인의 감각을 만난 아름다운 가게들이 즐비하다. 비록 작은 기념품 가게라 할 지라도 남포동의 개성 가득한 '샵' 만큼이나 애정이 가고 마음이 동한다. 태국의 '최애캐'인 코끼리를 통해 그들이 형성해 가는 문화는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세상 모든 만물은 코끼리로 형상화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마저 든다. 그 다채로움 이란.

  멋진 가게를 들러 한 껏 그들의 감각에 감탄하다 나오면 오후의 작열하는 태양의 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사원을 마주한다. 만물을 탐했던 스스로를 잠시 질책해 본다.



  '님만해민'의 현대적 아름다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님만해민이야 말로 치앙마이 자본가들의 놀이터라고 볼 수 있다. 골목골목 이어지는 형형색색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들은 올드타운의 멋과 맛과는 분명 다르다. 가게 앞 세워진 입간판 하나, 외벽의 덩굴 하나에도 멋을 냈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제자리를 돌아오더라도 지루하지 않다. 멋을 낸 가게들 사이 위치한 많지 않은 숙소들도 저마다의 감각이 있다. 배낭여행객을 주 고객으로 한 올드타운의 수많은 호텔,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감각이다. 요즘 말로 고급진 멋 부림이랄까. S자로 누운 선베드만 놓고 평가를 해보아도 올드타운과는 그 격차가 벌어진다.

 종종 무던히 세워진 노랗고 빨간 베스파를 만나는 것도,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상태 훌륭한 올드카를 만나는 것도 적지 않은 즐거움 중 하나이다. 한국이었다면 훌륭한 인스타 스폿이 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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